미주경제 2011-05-24
‘동성’이 아니라 ‘결혼’의 문제
서양의 동성애는 우리보다 뿌리가 깊다
이번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이슈로 동성결혼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이 문제의 핵심은 ‘동성’이 아니라 ‘결혼’이라는 점이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완비된 것은 언제쯤일까? 우리는 미국의 결혼법에서 ‘결혼이란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라고 배웠다.한국 민법의 결혼조항도 마찬가지다.
이 법조항은 언제 완성됐을까? 한국은 1948년 제헌헌법이고 미국은 1997년 클린턴 행정부 시절이다.결혼은 너무도 당연하게 고귀한 것이라서 굳이 법으로 규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뒤늦게 성문화됐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하지만 결혼의 역사는 길게 잡아도 근대 이후의 산물이다. 짧게 잡는다면 19세기, 결혼이 대중화된 것은 20세기 이후의 일이다.
결혼을 하지 않고 생식을 하고 종족을 번성시킬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여자를 훔쳐와서 결혼하는 약탈혼이 대표적이다. 중세시대에 남자와 여자가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던 사람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왕과 영주 등 일부 특권층에 불과했다.
왕자와 공주가 만나 행복한 생활을 꾸린다는 동화가 왜 모든 사람의 동경이 되었겠는가? 결혼은 일부 귀족층의 전유물이었으나, 이들은 결혼을 결코 속박으로 보지 않았다. 자손을 생산한다는 대의명분을 제외하고, 서로의 배우자는 장식품에 불과했다. 속된말로 내놓고 바람을 피웠다. 중혼이 관습화된 시대였다.
결혼이 의식으로 발전한 것은 종교가 국가와 국민을 완벽하게 장악해 나가던 시대의 일이다. 조금 지저분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고대부터 동성애는 인류가 성욕을 풀어내는 중요한 수단 중의 하나였다. 동성애는 남녀간의 결합에 대한 반작용이 아니라, 동시대에 같이 유행했던 사랑의 유형이었다.
고대사회 동성애는 오히려 양성애를 능가했다. 윤리교과서와 사회 교과서, 그리고 미술과 음악교과서에 나오는 허다한 유명인물들이 모두 동성애를 즐겼다. 이들은 완벽한 동성애가 아니라 동성애와 양성애를 넘나들던 인물들이었다.
동성애를 찬미하는 문학작품은 얼마든지 널려 있다. 중세 기사들의 모임은 사실상 동성애의 문화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의 삼총사에 나오는 기사들의 복장을 보라. 남성의 성적인 상징들이 최대한 돌출되게 만들어 놓았다. 일부 기사집단에서는 남색을 즐기지 않으면 도태될 정도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16세기부터 성직자를 대상으로 동성애 금지법이 있었다. 카톨릭 성직자들 사이에 신부는 신부대로 수녀는 수녀대로 동성애가 얼마나 심각했으면 이러한 금지법까지 있었겠는가? 일련의 종교개혁이 남녀간의 결혼을 신성시하고 의무화했다는 점에서 당시에 동성애의 문제가 어느정도 심각했는지 알 수 있다.
19세기와 20세기는 결혼제도의 전성기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쇠퇴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유럽의 커플 중에서 결혼커플의 비율은 30% 남짓이다. 절대다수의 위치를 이미 상실한 것이다. 이들은 동거커플, 동성커플, 임시커플 등을 광범위하게 인정한다. 그들의 뿌리 속에 결혼을 반드시 남녀간의 맹세 속에 맺어진 의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잠재의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 미국! 역시 동성애의 문제는 심각했다. 동성결혼 문제가 미국사회에서 새삼 공론화된 것은 1970년대였다. 베트남전 반대시위에서 촉발된 히피들의 반항문화는 정치,경제,사회,문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상당한 파급력을 낳았다.
히피문화를 주도한 것은 ‘마약’과 ‘동성애’였다. 이들은 제도적으로 동성애를 합법화시키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길거리에서 동성끼리 진한 키스를 나누거나 손을 잡고 걸어가도 18세기 유럽처럼 돌팔매질을 당하거나 남들이 뱉는 침을 맞지는 않아도 됐다. 그정도로 인식을 바꿔 놓은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 내놓고 동성애 커밍아웃을 한 국민은 4백만명으로 추산된다.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가정을 거느린 평범한 가장이, 알고보니 동성애자였다는 식의 설정은 4백만명 곱하기 5는 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왜 오바마 대통령은 동성애를 지지하나?
오바마 대통령이 동성애자일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결혼법을 만들었던 클린턴 전 대통령도 16년만에 동성결혼 찬성 입장으로 돌아섰다. 정치인은 항상 중간자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 여론의 향방에 맞춰 정책을 수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동성결혼에 대한 국민들의 찬성여론이 2009년을 기점으로 과반을 넘어섰다. 일부 정치인들은 대선에서 동성애자들의 보팅파워가 5백만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에게 동성결혼의 제도적 인정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인정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바마 대통령 입장에서는 일종의 승부수를 띄운 셈이다.
수년간의 치밀한 연구작업이 선행됐을 것이다. 이쯤에서 동성결혼을 지지한다는 발언을 해도 손해보다는 이익이 많다는 판단이 들었을 것이다. 미국에서 액티브한 약 100여개의 동성애단체에서 막대한 로비자금이 쏟아질 것이다. 똑똑하지 않은 게이는 드물다. 동성애자의 상당수는 미국의 상위계층을 형성하고 있다.오바마 대통령의 동성결혼 찬성 발언은 동성애자들이 원래 소속된 커뮤니티, 즉 보수의 민심을 뒤흔들 수도 있다.
동성결혼 합법화에 반대하는 동성애자도 있다. 미국의 동성애는 히피와의 연관성을 빼놓을 수 없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상징인 히피들 중 상당수가 동성애자인데, 극단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이들 가운데 동성결혼 합법화에 반대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혼을 하면 수백가지에 이르는 정부의 각종 보장성 사회복지프로그램을 수혜받는데 왜 반대하는 것일까? 동성결혼 합법화의 심층 이데올로기에는 국가가 동성애를 자기 관할권내에 편입시켜 직접 통제하려는 음모가 숨어있다는 것이다.
제도권으로 편입될 경우, 혜택도 많은 만큼, 통제도 커질 수 있다. 반골기질로 똘똘 뭉칭 이들 과격 동성애자 그룹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수치인 것이다. 하지만 게이단체의 여론조사결과 90% 이상이 동성결혼 합법화를 바라고 있다.
보수계층은 사회적인 터부 그룹인 동성애자에게 자신들과 똑 같은 권리를 부여하는 것을 생래적으로 거부한다. 보수와 진보의 양극단은 통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종교가 이 논란에서 배제되고 있다. 미국 국민들에게 이미 종교단체의 반대논리가 먹히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종교단체들이 동성결혼이슈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일 수는 있어도, 이들의 반대논리가 정교하지 못하기 때문에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이 이슈가 종교의 이슈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킨제이 보고서(1953년)
완벽한 이성애자 48%
최근 3년래 완벽한 동성애자 8%
양성애자 10%
동성애 취향 있으나 실제 행동은 하지 않은 비율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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